굿컴퍼니가 뭐죠?

2011년 한 여름날 새벽,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콜벳, 쉐보레,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등 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이 넘는 고급 수입차 십여 대가 중앙선을 넘나들며 ‘드리프트'(차량을 360도 회전시키거나 S자 형으로 계속 미끄러지며 운행하는 폭주 행위)로 난동을 부렸다는 기사가 주요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외국 저작권 에이전시의 사장님과, 이 기사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 자본의 천박함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라고 혼자 열 받아 떠들고 있었죠. 에이전시 사장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업의 바람직한 모델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며 “Good Company”를 권해주셨습니다.

핵심 내용은 고용주(employee)로서, 판매자(seller)로서, 그리고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집사(steward)로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각 역할 별로 기준을 만들어 포춘 100대 기업을 평가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 오만하고 천박한 자본의 반성과 사회적 압력을 이끌어 낼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나름 기업의 역할을 세 가지 큰 범주로 나눠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판단하고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11월 퓨처디자이너스라는 법인의 파트너들과 함께 이 책을 번역 출간했고, 책의 좋은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자, 역자 그룹을 포함하여 알게 모르게 연결된 기업 대표들, 그리고 우리 사회 선한 영향력의 확산에 공감한 일반 직장인들이 모여 굿컴퍼니 캠페인도 시작했습니다.

캠페인 시작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라면 상무의 비행기 승무원 폭행, 빵 회장의 호텔 종업원 폭행, 조폭 우유회사 직원의 대리점주 폭언 등 자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나쁜 기업인과 불공정한 사업 관행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굿컴퍼니 캠페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단연 “굿컴퍼니란 무엇인가?” 이었습니다.

과연 굿컴퍼니란 무엇일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아쉽지만, 굿컴퍼니 캠페인을 진행하는 주체조차도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입장 없이는 캠페인의 방향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굿컴퍼니를 “제품(또는 서비스)의 ‘수명주기’에 관여된 모든 ‘주체’와 ‘생명체’에게 일방적인 피해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기업”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먼저 “수명주기”와 “주체”, 그리고 “생명체”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업의 제품(서비스)는, 마치 사람처럼, 태어나고 죽습니다. 이걸 “수명주기”라 하죠. 특히 모든 제품은 자연으로부터 원재료를 채취해서, 필요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며, 판매 후 관리 과정을 거쳐, 자연 소멸되거나 폐기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모든 “주체”라 하면, 기업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주주와 이사회, 직원 뿐 아니라 원재료를 공급하거나 생산 혹은 판매 활동을 대신 해주는 협력 기업, 해당 제품(서비스)을 소비하며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소비자와 지역사회, 시민 단체, 그리고 정부 등도 포함됩니다.

“생명체”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을 포함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의미하구요.

과연 이런 모든 것에 일방적인 피해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요?

우리 인생과 삶을 “제로섬” 게임의 룰에 대입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며 우리 증조 혹은 고조부모님들의 삶을 되짚어 본다면, 거기서 어떤 힌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경향신문에 실린 강신주 교수님의 칼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선조의 삶을 통해 굿컴퍼니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굿컴퍼니의 일반적인 지향점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강신주 교수님 칼럼 링크

제가 생각한 굿컴퍼니의 정의에 앞서, 기본적으로 굿컴퍼니가 만들어 공급하는 제품과 서비스 자체가 인류와 자연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내부 통제가 잘되어 있고 직원 복지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총과 지뢰, 미사일 같은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기업은 굿컴퍼니가 될 수 없습니다. 불량 식품과 덫, 올가미 등 불법 사냥 용품, 동물과 식물 등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물질이나 제품은 그 과정이 아무리 선하고 책임 있게 이뤄진다 하더라도 제품이 갖는 본래의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굿컴퍼니는 제품과 서비스의 편익이 유한한 자원의 소비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주는지 고민하며, 제품과 서비스의 편익 극대화에 노력합니다. 인간의 경제 활동은 유한한 자원의 소비를 전제합니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편익이 자원 소비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활동을 중단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1만년의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두 번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이나, 불필요한 소비를 충동적으로 조장하며 자극하는 판촉물이나 사은품, 그리고 소유욕을 자극하며 필요 이상의 소비를 조장하는 제품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제 책상 위에는 평생을 써도 다 못쓸 펜과 샤프, 칼, 스테이플러 등이 가득합니다. 이런 과도하면서도 불필요한 소비를 적절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측면에서의 캠페인 뿐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 기업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굿컴퍼니라면 효용 가치 이상의 소비를 촉진시켜 자원을 낭비하는 것에 관해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생산자, 판매자, 고용주, 집사로서 굿컴퍼니의 지향점

모든 기업은 생산자, 판매자, 고용주, 그리고 집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는 이 4가지 범주에서 굿컴퍼니의 지향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산자로서 굿컴퍼니의 지향점

굿컴퍼니는 1) 생산과정에서 지구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피해를 줄이고, 2) 유한한 자원의 사용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며, 3) 생산과정에 관여한 하청 기업 종사자들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생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생명체에 대한 피해는 대부분 가시적인 영향이 많아, 이를 판단하거나 예방하려는 노력을 알아보기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공장 폐수 배출을 줄이고, 공기 오염장치를 만드는 등의 노력이 여기에 포함될 테니까요.

하지만 자원 사용에 대한 정당한 대가의 지불에 대해서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책의 제작과정을 예로 들면, 출판사는 제지사로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종이를 구입합니다.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과정을 단순화 하여 보면, 제지사는 펄프를 구입하여 종이를 만들고, 펄프사는 원목을 베고 가공하여 펄프를 만들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기업은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고 이윤을 확보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벌목으로 인한 산림의 황폐화로 홍수나 가뭄이 생겨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다면, 과연 출판사가 지불하는 종이 값에 농작물 피해에 대한 정당한 비용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굿컴퍼니라면 비록 나무를 직접 벤 벌목회사가 아니더라도 벌목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거나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관련 회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펀드를 조성하거나 자연 복구를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이런 비용을 반드시 원가에 반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산과정에 있어서 하청 기업에게 그 책임을 모두 위임했다 하더라도,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사회적 환경적 책임으로부터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굿컴퍼니는 하청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생산 전 과정에 관여된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판매자로서 굿컴퍼니의 지향점

굿컴퍼니는 1) 판매와 판매 후 관리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생물체에 대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2)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공정한 가격으로 제공하여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파타고니아 창업자이자 알피스트인 이본 쉬나르 회장은 그의 저서 책임 기업(responsible company)에서, 쓰레기 매립장 혹은 소각로로 향하는 폐기물의 75%가 개인이 아닌 기업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판매와 유통 과정에서 생산되거나 만들어진 포장지의 3분의 1이 소비자의 손에 전달되는 즉시 버려진다고 합니다. 포장지를 줄이는 노력 하나 만으로도 생물체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류 창고의 위치를 정함에 있어서도, 부동산 가격과 물류비 절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보다는, 배송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 시키는 것을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월마트는 운송 차량의 공회전 시간을 줄이는 짜임새 있는 정책 하나만으로도 연간 수백만 달러의 경비를 줄이는 동시에 환경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에 있어서도, 가급적이면 재생 가능한 부품을 활용하고, 부품 하나 때문에 제품을 통째로 버리거나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품의 유지 보수를 편리하게 하거나 수선 서비스의 제공을 통해 불필요한 소비를 억제할 수 있도록 장려합니다. 그리고 굿컴퍼니는 자연 소멸 혹은 폐기되는 제품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폐기물을 적극적으로 회수하고 이를 재생 또는 재활용하려 노력합니다.

굿컴퍼니는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합니다. 고객의 신뢰는 홍보나 마케팅 활동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높은 품질의 제품(서비스)을 공정한 가격으로 제공함으로써 구축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고객의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과도한 광고는 마케팅 활동을 지양하고, 품질 개선과 고객과의 관계 개선 등에 투자하면서 제품과 서비스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효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고용주로서 굿컴퍼니의 지향점

굿컴퍼니는 직원이 기업 구성의 가장 핵심적인 이해관계자이며, 이들을 안전과 행복이 기업 이윤에 앞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을 세심하게 대우하고 배려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개별 직원을 기업 활동의 수단이 아닌 존재의 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기업의 이윤이 희생되는 상황에서도 이들에 대한 배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충분한 시간은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개인의 가치가 기업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거나, 개인의 능력이 기업이 요구하는 것과 다를 경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를 조율해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설사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굿컴퍼니는 겸손하며 세상을 더 밝고 긍정적으로 만드는 또 다른 시도를 존중하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지역 사회의 집사로서 굿컴퍼니의 지향점

굿컴퍼니는 지역 사회가 정한 법과 규칙을 존중하며 기업 윤리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모든 기업은, 생산과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해당 지역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지역 사회가 정한 법과 규칙을 존중하는 것은 구성원으로써 의무이며 지역 사회를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더 나아가 굿컴퍼니는 법과 규칙이 미처 다루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조차 철저한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 정신에 부합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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