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일기

실패는 앗싸다!

작성자
틔움출판
작성일
2018-09-16 22:10
조회
1675
지난 해 송인서적 법률상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회생법원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정부에서 주관하는 '실패 박람회'에 회생법원이 한 꼭지를 맡게 되어 재기 사례 발표자로 다녀왔습니다.

머 그리 자랑할 내용은 아니지만, 기록을 위해 흔적을 남깁니다. 발표용 시나리오라 글이 조금 거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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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8년 9월 14일(토)
장소: 광화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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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일상이다.
재기는 도전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실패가 일상이란 말에 동의하시나요?

과연 우리는 매일 성공적인 일상을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 일상에는 실패가 훨씬 많을까요?

먼저 실패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죠. 실패란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업을 했다가 뜻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매일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제대로, 계획대로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실패로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스마트 폰 일정에 다음날 해야할 일들을 적어 놓고 제대로 잘 한 일을 하나씩 지우는데요. 매번 절반 이상을 지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 저는 하루의 50%의 실패를 매일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나라 법인 사업자와 개인 사업자 모두를 포함한 총 사업자 가운데 매년 몇개 사업자가 폐업을 할까요? 약 90만개의 사업자가 폐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럼 폐업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약 70에서 80% 정도 된다고 합니다. 10개 사업자 중에서 약 7~8개 사업자가 실패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실패를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요? 재기를 새로운 도전을 위한 경험 정도로요.

저는 개인적으로 실패를 앗싸라고 정의하는데요. 제 후배 아들 때문입니다. 4살된 사내아이가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게임을 하다 끝나면 "fail" 즉 실패라는 메시지가 뜨는데요. 이걸 보고는 "앗싸"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제 후배가 물어봤다고 해요.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하니까 그 아들이 "다시하는 거!!"라고 했답니다. 아이에게 실패는 다시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실패를 그럴 듯 하게 포장해도 실패의 경험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실패해 보는 것입니다. 사업을 가짜로 먼저 해보는 것인데요. 이를 경영학에서는 프로토타이핑이라고 합니다. 프로토 타입이란 샘플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예상 고객 집단에게 판매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IT 관련 업종에서 스마트폰 앱이나 게임 관련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실제 앱을 개발하는데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앱이나 게임 개발을 완료하여 유통하기 전에 그 앱이나 게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샘플 집단에게 뿌려 피드백을 받아 보는 것입니다. 이런 프로토타이핑 기법을 첨단 IT산업뿐 아니라 떡복이나 치킨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식구들에게 먹이는 형식이 아니라, 실제 하루에 50인분씩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환경에서 떡복이나 치킨을 만들어보고, 마찬가지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샘플 집단에게 제고하여 의견을 듣는 것이지요. 그러면 음식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뿐 아니라 만드는 방식이나 판매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책도 비슷합니다. 책은 편집하고, 인쇄하고, 제본 하는데 돈이 많이 드는데요. 보통 처음에 약 2천부 정도를 제작합니다. 그런데 2000부씩 만들어서 500부도 안 팔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간단하게 만들고, 교정하기 전의 원고를 프린트기로 소량(3~5부) 출력해서 서점에 슬쩍 놓아 보기도 하고, 출판사마다 확보하고 있는 독자 평가단에게 나눠주고 의견을 듣습니다.

이렇게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미리 실패를 경험하면 하면 실제 사업에서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 부도나 폐업의 위험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지요. 당연히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이구요.

그러나 신중하게 프로토타이핑을 하고 사업을 시작해도 실패의 위험을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앞선 통계에서도 10개 중 7~8개가 폐업을 한다고 하니까요. 물론 이 분들이 모두 프로토타이핑을 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로토타이핑과 실전은 엄연히 다르니, 실패할 확률이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사업을 잘 준비했지만, 그래도 부도나 폐업의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바로 회생의 신에게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실패한 기업들의 회생을 돕는 사회적 기구나 법적 기구의 도움을 받는 것인데요. 오늘은 법적 기구인 회생법원을 통한 저의 재기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 1월 2일 출판사를 운영하던 중에 국내에서 2번째로 큰 도매상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부분 12월 말에 한해를 돌아보며 연말 보너스를 주기도 하고 새해 계획을 세우기도 하죠. 저희 회사도 그런 작업을 하고 1월 2일 느즈막이 출근해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국내 2위 도매상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먼저 출판사와 도매상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은 저자가 원고를 쓰고 출판사가 그 원고를 받아 편집과 디자인 작업을 한 후, 인쇄소와 제본소 등을 통해 책으로 제작하고, 이를 서점에 판매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출판사와 서점 사이에 도매상이란 회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대형 서점들과는 직접 거래를 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드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오프라인 서점이고요.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교보문고) 등이 대표적인 온라인 서점입니다. 이런 대형 서점과는 출판사가 직접 책을 공급하고 돈을 받는데요. 이 외에도 중소형 서점과 독립서점 문방구 등이 국내에는 1000개가 넘습니다. 출판사들은 이런 서점과 직접 거래를 하기가 어려워 대부분 도매상을 통해 책을 공급합니다. 따라서 도매상에게 책을 주고 돈을 받는데요.

이 도매상이 부도가 났습니다. 당연히 책 값을 받을 길이 막막해진 것이지요. 당시 이 도매상과 거래했던 약 3000개의 출판사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이들 3000여 출판사가 도매상으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약 200억원이 넘었는데요. 이걸 고스란히 날리게 된 셈이죠.

출판계는 과거에도 도매상 혹은 서점의 부도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출판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실제로1997년 IMF 때는 대형 도매상 3개가 한꺼번에 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출판사들은 부도 금액을 전부 손실처리 하고 말았죠. 돈은 하나도 못 받았고, 책만 아주 일부를 회수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판사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채권을 갖고 있는 주요 출판사들이 모여 대책을 마련해보자고 머리를 모은 것이지요. 처음에는 금융권 워크아웃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실의에 빠져 도매상 혹은 서점 부도때마다 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구나 라며 탄식하던 중, 법적 기구를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회생의 신(즉, 회생법원)을 찾은 것입니다.

회생법원은 3000명에 이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공평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도매상을 회생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결국 회생법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채권자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게 되었고, 직원과 채권자, (부도 기업의 경우,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을 갖고 있는 직원들도 채권자에 속합니다) 및 금융권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서 부도난 도매상을 회생시킨 것입니다.

저는 출판업을 시작한지 약 8년 정도 되었는데요. 출판업계에 있는 동료나 선/후배 등은 항상 신규 서점과의 거래를 두려워합니다. 부도 또는 폐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서점이 부도 또는 폐업이 되면 출판사는 공급한 책도 못 받고 대금도 떼이기 일상이거든요. 실제로 매년 많은 서점이 문을 닫고 새로운 서점이 문을 열고 합니다. 하지만, 부도가 날 위험 때문에 새로운 서점과의 거래를 꺼려한다면, 저희 책이 독자와 만날 기회가 크게 줄어들게 되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거래를 기피할 수만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점 혹은 도매상 부도 또는 폐업의 위험을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거래 관계를 만들라고 얘기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도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며 이미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인식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사업을 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거래 당사자가 부도가 나거나 폐업을 한다 해도 다양한 구제 방법이 있습니다. 채권단이 힘을 합쳐 회생법원과 같은 법적 기구를 통한다면 기업 부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래처 부도가 걱정되어서 거래를 기피하기 보다는 부도 또는 폐업의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따른 통제된 거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실패는 일상이며 재기는 도전입니다. 실패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재기를 두려워한다면 의미 있는 사업을 시작하거나 영위할 수 없습니다. 특히 거래처 부도 위험을 두려워하여 거래 자체를 꺼리기 보다는 부도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거래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악의 경우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기를 도와주는 회생 법원이 있기 때문입니다.